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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5 09:55 콜빌 댓글수 : 0 추천수 : 0 조회수 : 0

​​​​​​​천왕이 돌아 가셨는가
인왕이 돌아 가셨는가
오만 나무들과 청산들이
다 흰 문상을 입었네
날이 밝아 태양이
문상을 오자
집집마다 처마끝에 눈물이 떨어지네
이 詩는 김삿갓의 -눈- 전문이다.
차창밖에는 눈에 덮인 아름다운 하얀 세상이 시야를 붙든다.

김삿갓의 시가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그의 본명은 김병연(1807-1863)이다.  그가 토해내는 숨결마다 시가 되고 그의 생애는 시로 웃고 시로 울며 평생을 방랑시인으로 살다가 그렇게 떠났다.

안동 김씨 문중에서 태어났지만 평생 얼굴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기구한 운명,
그 혼백이 오늘 눈발로 날린다. 생전에 못다쓴 시들을 광활한 허공에 쏟아낸다.
나는 그 시혼이 담긴 시를 개작한다.

님이 떠나셨는가
님이 정말 떠나셨는가
사방에 모든 사물들
흰 옷을 입고
님이 가는 길을 슬퍼하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따뜻한 햇살이 씽긋 웃어보이자
조의를 표하던 모든 사물들
기다렸다는 듯이 옷을 벗어버리네

막 목욕을 마치고 나온 자태의
그 요염스런 몸에서  
물기 가득 배인 욕망의
맨살을 나는 보네

-눈 그치고  나니- 조윤주-

김삿갓이 한 평생을 시의 숨결로 살았다면 나는 한평생을 사랑이란 화두에 매달려 산다.
어찌보면 인생의 깊이가 하늘과 땅 차이리라.
그러나 본성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늘 가슴이 허전하고 외로움의 강도가 나잇살 만큼이나 두꺼워지는 것을---
남들은 이런 날 보고 주변에 지인도 많은 사람이 사치스럽게 외로움을 탄다고 하지만  나는  가슴이 시림을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때때로 사랑에는 눈(目)이 없다. 그것은 화강암 속에서 거칠게 내뱉는 숨결이다.
그래서 어느 곳으로 흘러 갈 것인지 미리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사랑은 거대한 불덩이가 되어 가슴과 가슴으로 돌진해 가는 불(火)의 길이다.
하여 위대하지만 동시에 위해(危害)하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운명적으로 태어난 사랑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나는 스쳐지나가는 사랑은 관심이 없다.  운명적 사랑을 갈구한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지고 기다려지는 이 헛된 망상.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모독이다.
계산적 잣대 앞에서 어이없이 무너지고 마는 사랑은 그저 욕망의 게임이다. 잠시 내리다 그친 진눈깨비가 거리만 더럽히고 말듯이 얕은 사랑은 인생만을 더럽히고 만다.
난 그런 연유로 김삿갓의 시를 졸작이나마 개작해 보았다.  따뜻한 햇살에 흔적도 없이 쉽게 녹아내리며  옷을 벗는 것에 대한 야유----

오늘 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자신의 나뭇가지의 두께보다 더 두껍게 쌓인 눈을 어쩌지 못하고 가슴을 찢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진정한 사랑이란 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부피와 무게로 다가온다 해도  함께 쓰러지거나 혹은 함께 지탱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내며 주변에 모든 것들까지 아름답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라!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그 무게보다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이 사랑이다.
그런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가벼워지고, 백년을 약속한 육체의 언어도 그 말의 의미가 점점 희미해 지는 것이다.그래서 사랑은 움직이는 생물체이다.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을 헛되이 하지 않는 것 그것만이 후회없는 사랑이 아닐런지------
그 사랑은 어둠속에서도  한줄기의 빛으로 길을 만들고 걸어가야 하는 지표를 알려준다.

김삿갓이 비록 자신의 몸을 감추었지만 그가 걸어온 길 모두가 시(詩)의 빛으로 자신의 내면을 밝히고, 더 나아가 바깥세상을 밝게 비추었듯이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비추고 상대를 환하게 밝히는 것이다. 아무리 등(燈)이 밝다하나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빛보다 밝을수야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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