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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8 12:55 콜빌 댓글수 : 0 추천수 : 0 조회수 : 0

갑자기 폐암 말기로 판정을 받고 보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살다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만나면
또한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겠니?
이렇게 떠남이 일찍 올 것으로 예견했더라면 너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텐데, 여러 가지 사소한 이유로 대화다운 대화 한 번 못 나누고 너와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이제라도 너에게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아왔는지를 말할까 한다.
그래야 적어도 네가 나를 오해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50년대 중반 농촌에서 태어나 리 단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면 단위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매일 왕복 12킬로미터를,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16킬로미터를 걸어 다녔다.
지금까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의 도보 통학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평생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나는 부안실업고등학교 연초과를 졸업했다.
아마 대학에 진학을 하지 않았다면 담배지도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꼭 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담배지도사 보다는 교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과 대학 진학에 대해서 상담을 했더니 선생님께서 말리셨다. 뭐, 실고 나와서 준비도 없이 대학에 갈 수 있겠느냐고. 하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공부를 시작했다. 목표가 정해지니까 공부가 잘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입 예비고사를 무난히 합격하고
원하던 영어영문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선생님으로부터 단 한번도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와서 나 자신도 스스로
놀랐다. 장학금으로 학비는 충당되었지만 집에서 생활비 지원이 없어
중·고생 과외, 뺏지 공장의 노동, 화장품 장사 등으로
생활비를 직접 벌어 썼다.
1976년 교사 임용 순위고사에서 전남과 경기 두 곳에서 수석을 했고,
고향이 부안이기 때문에 경기보다는 전남을 택했다.
전남에서 평교사 17년째가 되던 1994년에 전문직 1기 공채시험(영어과)이 생겨 응시하여 합격했고, 같은 해 3월 1일
충의교육원 장학사로 발령을 받았다.
그 후 전남교육연수원 장학사, 전남교육연구원 교육연구사,
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전라남도교육청 장학사,
전남외국어고등학교 교감, 함평월야중학교 교장을 거쳐
지금 이 곳 송호학생수련장 관리사무소장 자리에 와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목표를 담배지도사에서 교사로 수정한 것은 사고방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사고의 지향점을 현실 안주에서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이동시켰던 것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또는 “뱁새야! 황새걸음을 따라 가라” 등은
그 당시 나의 책상 앞에 붙어 있던 구호였다.
나는 한 단계 높게 생각해야 희망, 이상, 목표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사고가 긍정적·적극적·도전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높게’에 ‘깊게’, ‘넓게’, ‘유연하게’를 더하여
평생 동안 내 사고의 기본 틀로 다졌다.
높게 생각하면 희망이 생긴다. 깊게 생각하면 실수가 줄어들고
넓게 생각하면 용서할 수 있다.
또한 유연하게 생각하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

평생 동안 내가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것은 편견이었다.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 마음처럼 볼 수 없었다.
전통, 권위, 종교 같은 것들이 대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을 멀리하고
대상을 제대로 보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내 나는 평면거울과 곡면거울의 기능적 차이에서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다.
편견은 인간의 내부에 있는 의식의 면(거울)이 만들고 있었다.

개구리 한 마리가 웅덩이에 뛰어 든다.
수면이 일그러진다.
수면에 비친 산의 모습이 흔들린다.
수면이 평면을 회복한다.
산의 모습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의식의 면을 평면으로 유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보를 수집하고 판별하는 인간의 감각기관과 뇌가
완전한 것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 귀, 코, 입, 피부 등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은 제한적인 것이고 인간의 뇌는 제한적인 자극에서 ‘숨은 전제’를 찾아내어
원형을 복원할 만큼 발달되어 있기가 쉽지 않다.

해는
하루에도 수없이 폭발하여
제 모습을 지킨 적이 없지만
변함이 없다고 믿으며

달은
제 모습을 잃은 적이 없지만
보기에 기울고 차
늘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과 가치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편견 극복의 과제이며,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면을 평면에 가깝게
유지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인간은 생물이다. 생물은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적응하지 못한 생물은
살아남지 못한다.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이 필요하다.
감각기관은 개체의 적응에 도움이 되는 자극과 해가 되는 자극을 판별한다. 개체의 자극에 도움이 되는 자극을 편의상 +자극이라고 해 두고,
해가 되는 자극을 -자극이라고 해 두자.
푸른 잔디는 +시자극, 쓰레기는 -시자극, 베토벤의 교향곡은 +청자극,
소음은 -청자극, 싱싱한 사과는 +미자극, 상한 우유는 -미자극,
밤꽃 향기는 +후자극, 시궁창의 악취는 -후자극,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어머니의 손길은 +촉자극, 전기고문은 -촉자극이다.
+자극만이 모인 상태―이것을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하고,
+자극을 상대방에게 주는 것을 선이라 하며,
-자극을 주는 것을 악이라 한다.
+자극만이 모여 있는 곳을 천당이나 극락이라고 하고,
-자극만이 모인 곳을 지옥이라고 한다.
결국 인류의 문화 발달이라는 것의 본질은 -자극을 거부하며
은밀하게 +자극을 추구해 온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을 ‘Betterism’이라고 부르는데, 인간이 문화를
올바로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이 ‘Betterism’을 탈피해야 한다고 본다.
건강한 자아 창조를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어느 한 쪽
자극의 추구에서 벗어나 추구하는 의미에 따라
+자극과 -자극을 조화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The Man Who Died(죽었던 남자)」는 ‘Lawrence’가
1930년 3월 2일 45세의 나이로 죽기 2년 전에 썼던 중편소설이다.
‘Lawrence’가 「The Man Who Died」라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홀로서기(aloneness)’와 ‘더불어살기(togetherness)’의 성취가
‘whole man’의 전제 조건이라는 것이었다.
이 작품에서 ‘Lawrence’가 「The Man Who Died」가
예수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독자는 예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Lawrence’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는 것은
홀로서기(aloneness)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설픈
더불어살기(togetherness)를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소설이지만 시사하는 바가 있어 소개했다.
온전한 사랑은 홀로서기를 완성한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다.

나는 종교가 없다. 그러나 종교관은 있다.
나는 종교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본다.
나는 종교를 생득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후천적인 프로그램으로 본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태어나기 전부터 인간의 내재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태어나서 깔려진 프로그램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종교는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르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개체가 처해 있는 시간과 공간이 다르니까.
하지만 종교가 나에게는 불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교는 휠체어 같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종교를 사실이라기보다는 가치라고 믿는다.

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 차 다녀갔다.
모두 다 뜻밖의 일이라면서 슬픔을 표했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민들레를 손수 캐서 보내 준 성길모, 임태준 교장선생님,
민물장어를 달여 보내 준 머리사랑(미장원) 정정숙 씨,
오이와 토마토를 보내 준 김미혜 선생님, 복어를 보내 준 동준이 아빠 등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은 죽어도 잊지 못할 것 같다.
네가 할 일은 많은 이들이 내게 한 것처럼
다른 아픈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다.

죽음은 끝이며 슬픔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좀 더 차분히 생각해보면 죽음은 종족번식을 위한 순환과정이다.
어미가 새끼를 낳아 수를 늘린 다음에는 종말을 고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는가.
평균 수명도 살지 못하고 가기 때문에 좀 아쉽기는 하지만,
이미 서두에서 말한 바대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 곳 땅 끝에서 바다 속으로 아름답게 지는 태양처럼
끝을 맞이하고 싶다.
그저 편안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

-송건식의 <지상에 별로 온 손님>중에서-

http://blog.daum.net/song1226 에서
송건식님의 다른 좋은 생각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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